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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프로그램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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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전진하기
작성자 김** 작성일 2009-05-21 조회수 1474

걸음 전진하기

 

   학기를 꼬박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부모님도 없이 지낸다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도전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을 나는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한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했던 나라라는 생각에, 낯설음에 미리 겁을 먹었던 걸지도 모른다. 리자이나에 도착한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호스트 가족과 나름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며 생소하기만 도시의 어두운 거리를 달리자니 그렇게 두려움만 앞서던지. 하지만 지금 나는 당당하게 말할 있다. 낯선 땅에서, 바람의 촉감까지 완전히 다른 도시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고.

  정규ESL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들은 2 가량의Preparation course 학교 친구들끼리만 모여서 듣는 수업이라 그런지 마냥 즐거웠다. 기초적인 영어를 다지고 호스트 가족들과 친해질 시간을 가지고 리자이나 시티 투어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Preparation curse 끝내고 Placement test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이제 정말로 본격적인 ESL 수업이 시작되겠구나. 여러 나라에서 친구들도 많이 만날 있겠고 영어도 많이 늘겠지.’ 가슴이 부풀어 올랐더랬다. Test 결과을 확인하고 내가 050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아마 그때부터 였던 같다. 내가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수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 새로운 수업 방식.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선배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보는 얼굴인데다가 수업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선생님은 040에서 올라는 기존 학생들 위주로 설명을 했다. 학생들은 ESL수업을 들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대충 설명을 해도 무엇을 해야 하는 ,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 꿰고 있었다. 나는 모두가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는 가운데, 언제나 새로 묻고 찾고 우왕자왕하며 따라가기 급급했다. 함께 040에서 공부하고 진급한, 이미 관계가 끈끈한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리 사교적인 성격이 못되어서 이기도 터이지만, 처음 주간은 그렇게, 간신히 수업을 따라가면서 융통성없이 다른 친구들 보다 배의 시간을 과제에 들여가면서 적응 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막상 수업에 적응을 하고 나니 점점 수업이 재미있어 지기 시작했다. 그룹과제를 하면서 친구들과도가까워 졌고 너무나 자주 하는 presentation 일종의 재미있는 활동 정도로 여길 있는 배짱이 생겼다. 여러 나라에서 친구들과 사귀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인원이 20 정도 되는 크지 않은 학급에서 한국, 중국, 일본, 멕시코, 스위스 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로부터 문화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우리 나라의 세계에서의 이미지, 위치 또한 인식 있었다. 이건 정말로 단순히 영어권 나라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차원을 넘어선 다문화 공존의 생생한 현장 한가운데 있는 나를 느낄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수업에 재미가 느끼고 나니 슬슬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내가 먼나라까지 왔는데 짧은 3개월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고 가겠다.’ 뒤부터 정규 수업 내용이 아니더라도, 성적에 들어가는 활동이 아니더라도 흥미가 생기고 재미를 느끼면 무조건 손을 들고 ‘I will do it.’ 외쳤다. 스스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일을 만드는 셈이었다. 사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현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쉽지 않다. 수업 밖의 다른 활동, 예를 들어 교회를 가는 것과 같은 활동을 해야 기회가 생긴다. 나의 경우는 손을 들고 I’ll do. 외침으로써 기회를 얻었다. 내가 제일 처음 지원해서 하게 일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 출신의 RCMP(Royal Canadian Mounted Police) 훈련생들의 말상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이 영어를 배우는 입장이었고 우린 동등한 상황에 있는 학생이었다. 일반적인 캐나다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떨어진 아시아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며, 나는 그렇게 첫번째 캐나다 친구들을 만날 있었다.

  다른 나의 지원(volunteer) 에피소드는 단지 , 그거 재미있겠다. , 밥도 주네 ’ 라는 간단한 생각에서 하겠다고 지원한, 결과적으로 나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일이다. Elective 수업에서 선생님이 며칠 뒤에 이곳 리자이나 대학의 교육이나 의학과 같은 나중에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conference 열리는 다른 나라에서 새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 이야기를 사람이 필요하다며 관심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겁도 없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선생님의 답례로 좋은 레스토랑에도 간다네.’ 라는 말씀에 ‘Oh! I will do it!’ 외쳤다. 한다고 말해놓고 설명을 들으니 일이 그리 쉬운 아닌거다. 청중은 200명에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고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소리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내가 일을 저질렀구나.’ 사실 이때 the Great Debate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어떻게 말하든 그들의 귀에는 어설픈 영어로 들릴 테고, 단지 나의 경험과 느낀 , 생각을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conference당일에 Conexus Art Centre에서 나는 마이크를 붙잡고 단상에 올라가 질문에 대답했다. 편하게 마음을 먹으니 떨리지도 않았고 열심히 경청하는 학생들을 보니 신이 나서 열심히 하나라도 말해주려고 했던 같다. 문답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던 학생이 다가와서 우리의 소중한 경험 이야기를 해줘서 너무나 고맙다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 돌아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의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말한 나의 경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구나. 일을 계기로 영어를 공부하는 있어 용기를 얻었다.

 나의 마지막 도전은 the Great Debate였다. 나로서는 의외이기도 했지만 debater 뽑혀서 학기 마지막을 보람되게 마무리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다른 반과 찬성, 반대로 맞서서 하는지라 상대가 무슨 말을 어떤 근거를 들고 나올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자료 조사를 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조절하면서 우리는 승리를 꿈꾸기 시작했다. The Great Debate당일, 노력의 결과에 걸맞는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렇게 나의 마지막 활동이 막을 내렸다.

  3개월은 사실 길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처음 적응 기간 , 시간은 나에게 1년과 같이 느껴졌다. 수업에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친해지고 스스로를 도전하게 만들 있게 되자 시간은 나에겐 달도 되는 짧은 시간으로 느껴졌다. 정말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는 소중하고 값진 것을 많이 얻었다. 소중한 친구들, 선생님, 호스트 가족, 영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값진 새로운 경험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지만, 성장한 스스로를 느끼며 다시 이곳에 발을 디딜 있길 바란다.

 

 

리자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기말시험과 졸업 파티를 하루 남겨두고